인터뷰 ①

<여탕보고서>의 마일로,
<모멘텀>의 박지연 작가

"이게 여자일 리가 없다."
개그 만화를 그리는 모든 여자 작가들이 듣는 이야기다.



 

 선우훈, 로카
사진 전수만

 

<여탕보고서>(마일로)와 <모멘텀>(박지연)을 읽고 나서, 두 작가가 자매라는 사실에 놀랐다. 두 작품 모두 좋고, 서로 공통점이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SNS를 통해 커다란 사모예드 '솜이'를 키우는 모습까지 보고나니, 이 작가들을 꼭 함께 인터뷰하고 싶어졌다.

인터뷰를 위해 다시 만화를 읽어보니, 두 작품은 묘한 지점이 닮아있었다. 그림도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는 것.

마침 독립을 결정해 강화도에서 인천으로 함께 이사한 두 작가와 솜이를 유어마나의 두 필진이 만났다.

 
 
 

                

 
 
 

선우훈 둘 다 데뷔작을 성공적으로 작품을 완결한 작가가 되었다. <모멘텀> 완결은 아직이던가?
 
박지연 지난주에 <모멘텀>외전까지 끝냈다. 후기까지 전부.
 
마일로 <여탕보고서>는 끝난 지 아주 오래됐고.



선우훈 <여탕보고서>는 7월에 있던 부천만화축제에서 부천만화대상도 받았는데.


마일로 맞다. 상금이 아주 행복했다.

박지연 <여탕보고서>는 상을 두 개 탔다. 시민 투표로 받는 부천시민만화상까지.





여탕 문화를 유쾌하게 그린 마일로의 <여탕보고서>(좌, 네이버)와 BL이라는 장르 문법 안에서 어른스러운 사랑과 연애를 보여준 박지연의 <모멘텀>(우, 레진코믹스). 인기리에 연재된 두 작품은 모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로카 박지연 작가는 <모멘텀>완결 이후 어떻게 지낼 예정인지.
 
박지연 연재가 끝났으니 신나게 놀았으면 하는데, 놀려고 생각해 보니 시간이 없다. 바로 차기작을 준비할 것 같다.


선우훈 마일로 작가는 <여탕보고서> 끝내고 어떻게 지냈나.
 
마일로 브랜드 웹툰을 하나 한 것 외에는 특별히 없다. 빨리 연재를 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경제적 여유가 없다. 최근에 독립해서.


선우훈 가족들이 있는 강화도에서 인천으로 이사했다고 들었다. 독립은 어떻게 결정하게 됐나?
 
박지연 부산에 있을 때도 일 때문에 서울에 자주 다녀갔다. 원래 서울에 올 생각이었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가족이 함께 강화도에 왔고. 강화도에서 이 년을 살았는데, 독립 준비는 예전부터 하고 있었다.
 

선우훈 솜이도 같이 이사를 왔는데, 언제부터 키운 건가?
 
박지연 강화도에 이사 온 뒤로.
 

선우훈 강화도의 시골에서 산 것으로 아는데, 도시에서는 큰 개와 산책하기 힘들 것 같다.
 
마일로 시골에 있을 때는 논 밭길로 산책하러 다니니까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좋았다. 지금은 좀 눈치가 보인다. 강화도에서 진작 못 나온 것도 솜이 때문이다. 너무 어려서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두 살 될 때까지는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박지연 어릴 땐 다 때려 부수고, 쏟고, 물고.
 

선우훈 솜이를 데리고 연재하기도 쉽지 않았겠다.
 
박지연 나갈 시간도 잘 시간도 없었다. 솜이가 생후 2개월일 때 왔는데 두 달 동안 절대 밤에 안 자는 거다. 두 시간 자면 오래 잔 거였고. 눈을 뜨는 순간부터 사람을 찾으며 울었다. 언제나 새벽에 작업을 하다가 울면 나가서 봐 주는 식이었지.
 
마일로 나는 잤다. 언니가 예민한 편이었고.
 
박지연 개가 우는데 아무도 못 듣는 거다. 밤에 <모멘텀> 작업을 하다가 봐주곤 했다. 아침에 산책을 시키면 밤에 좀 자니까 아침 산책을 두 시간 정도 시켰다.
 

선우훈 한적한 시골에서 인터뷰를 못 해 아쉽다. 솜이와 산책하는 모습도 보고 싶었는데.
 
박지연 사진으로는 시골이 좋아 보이는데 힘든 일도 많다. 수도 모터가 벼락을 맞아 고장이 나기도 하고. 주택이다 보니 아파트처럼 관리실에서 해 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원인을 찾아서 고쳐야 한다.

 
 

 

박지연 작가와 솜이. 연재 작업을 할 때도 언제나 함께였다고. 물론 독립한 지금도 함께 생활한다.


 

 

두 작가가 함께 산다는 것

로카 유년기가 궁금하다. 어릴 때부터 함께 만화를 읽곤 했나?
 
마일로 언니는 만화를 많이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같이 본 건 <드래곤 볼>이나 <원피스>, <나루토> 같은 유명한 것들이다. 어렸을 때 <닥터슬럼프> 비디오도 많이 보고.
 
박지연 나는 <아톰>을 봤다.
 
마일로 <아톰>을?
 
박지연 어릴 때 애니메이션 TV시리즈로 <아톰>이나 <밀림의 왕자 레오> 등을 봤다.
 

선우훈 나이 차이가 어떻게 되는지?
 
박지연, 마일로 다섯 살.
 


 

마일로 작가와 솜이. 강화도에서 인천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가구를 갖추지 못했다고 했지만, 책장엔 만화책이 빼곡했다.





로카 박지연 작가는 만화 외에 뭘 좋아했나?
 
박지연 중학교 때부터 영화를 많이 봤다. 부모님이 영화에 관심이 없으셔서 극장은 중3 때 처음 가 봤다. 고등학교 때는 영화를 찾아서 보고, 대학 때는 시간이 많아서 보고.
 

선우훈 만화를 그리게 된 건 언제인가?
 
박지연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만 해도 아예 만화와 연관이 없었다. 대학에서는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미대에 다니는 친구들을 사귀며 그 친구들과 덕질하고 만화책도 조금 봤다. 고등학교 때는 별로 안 봤는데, 그때 이후로 그 친구들이랑 놀고 싶어서 만화도 그리고.
 

선우훈 전공은 무엇이었나.
 
박지연 법학과다.
 

로카 요시나가 후미처럼?
 
박지연 맞다. 요시나가 후미의 만화볼때도 '이 사람 진짜 법학과 나왔을 것 같은데?' 싶은 디테일을 느끼곤 했다.
 

선우훈 친구들과 어울리며 그림을 그리다 보니 만화도 그리게 된 건가.
 
박지연 그렇다. 그때 친구들과 그림이나 만화를 그리며 지내다가 졸업할 때쯤엔 영화 일을 하려고 했다. 영화엔 콘티가 있고 콘셉트 아트가 있으니까.

그런데 1년 정도 일해보고 스튜디오에 들어가니 내가 앞으로도 제대로 할 수 있겠나 싶더라. 그때부터 만화를 그리기로 했다. 정말 어느 날 그리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로카 <모멘텀>이 첫 작품인가?
 
박지연 <모멘텀> 연재 전에는 네이버 베스트 도전에서 일 년 정도 가벼운 카툰 스타일의 만화를 그렸었다. 그 일로 연이 닿아서 한국의 레이싱 팀과 일 년간 같이 일했고. 그 후에 <모멘텀>을 하게 된 거다.
 

선우훈 마일로 작가는 어떻게 만화를 그리게 되었나.
 
마일로 패션 디자인과에 진학했다. 디자이너가 되려고 했는데 삼학년쯤 되니 안 될 것 같더라. 다른 직업을 생각하다가 옷을 직접 디자인하는 것보다 일러스트가 나을 것 같았고.
 
그리고 나는 정말 꾸준히 덕질을 했다. 그런 와중 덕질로 알게 된 친구가 애니메이션 입시 학원에서 알바를 권했다. 거기서 이 년쯤 일하다가 만화를 그려도 괜찮겠다고 생각해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로카 패션 하다가 옷이 필요 없는 만화를 그렸다.
 
마일로 호호호. 맞다.
 

선우훈 지인이나 가족들이 신기해하지 않나? 자매 둘 다 원래 만화 쪽에 뜻이 없었는데 성공적으로 연재했다.
 
마일로 하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부모님도 ‘아 직업이 있나 보다’ 정도로만 알고 계신다.
 

로카 수상과 상금에 대해서도 모르나?
 
마일로 다른 사람이 뉴스를 보고 말해 줘서 아신다.
 
박지연 지인이나 친구들도 내 직업에 대해 대충 만화 관련된 뭐 한다더라 정도로 아는 경우가 많다. 같이 덕질하던 친구들은 알지만, ‘걔, 그러다 프로 됐대.’ 정도의 반응이다.
 

선우훈 둘의 취향이나 성격이 상당히 다른 것 같은데.
 
마일로 지금도 그렇지만 대학생 때 진짜 엄청 달랐다. 나는 부산에서 패션을 전공했고 언니는 서울에서 법대를 다녔으니까.

그땐 언니가 전형적인 법대생 같았다. '법대생 여자', '안 꾸민다', '안경' 뭐 이런 느낌.
 
박지연 마일로는 패션디자인과니까 입학하자마자 온갖 실험적인 의상을 입고 다니던 시기였다. 머리랑 화장할 수 있는 것 다 해보고. 나한텐 왜 안경을 쓰고 다니냐고 하고.
 
마일로 그래도 지연도 지금은 패션에 많이 관심이 생겼고. 서로 비슷해졌다.


 

 

자매가 만화가로 함께, 또 따로 일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선우훈 서로 조언을 하고 영향을 받기도 하나.
 
마일로 조언은 했지만 도움은 안 됐다. 언니가 F1 덕질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덕질을 하더라도 축구 같은 걸 하지 왜 F1을 골랐냐고 했다.
 
박지연 축구를 좋아했으면 조석 작가의 <조석축구만화> 같은 거 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로카 의견은 주고받지만 도움은 안 된다는 건가.
 
박지연 하하. 서로에게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사이다.
 
마일로 그래도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언니가 <모멘텀> 뱅커 편 작업하는 걸 옆에서 보다가 조언한 적이 있다. 주방에서 일하는 남자가 미샤를 때리는 장면인데, 때리는 남자를 너무 잘생기게 그렸었다.

‘이 남자가 이렇게 잘생기면 내용에 문제가 생긴다. 더 못생기게 그려라.’ 하고 말했었다.
 
박지연 맞다. 처음엔 너무 섹시하게 그려서.
 
마일로 섹시하게 생긴 남자가 미샤 얼굴을 막 잡고 있는데 그러면 안 된다고.
 

선우훈 <여탕보고서>에 박지연 작가가 많이 등장하는데 본인은 상관 안 했나?
 
박지연 나한테 얘기하지 않고 그냥 등장시킨다. 만화를 보고 나서야 “야 이거 뭔데?” 하고 카톡 보내면 그냥 “ㅋㅋㅋ”하는 답장이 오는 식이다.
 

로카 나올 때까지 모른다니 작업 중간에 관여를 거의 안 하는 모양이다.
 
박지연 그렇다. 서로 남의 만화 보듯 본다. 그냥 "아 재밌네~" 하고. 만화 나오고 이틀 뒤에 "아 이거 나오지 않았나?" 하고 보고.
 

선우훈 서로 다른 타입의 만화를 그리는데, 부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하지 않는 걸 잘하니까.
 
마일로 언니가 전에 그리던 만화는 개그 만화였고, 나도 BL만화를 많이 그렸다. 사실은 비슷한 면이 있다.
 
박지연 내가 카툰을 그리면 <여탕보고서>와 스타일이 비슷하다. 누군가 내가 그렸던 카툰을 보고 <여탕보고서> 작가의 전작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로카 마일로 작가도 카툰 말고 다른 장르를 많이 그렸었나?
 
마일로 동인지 많이 냈었다. BL을 많이 그렸는데, 개그 말고 다른 걸 잘 못 그리다 보니 BL도 다 개그 만화였다.
 

선우훈 협업할 생각은 없는가.
 
박지연 가끔 만화 그리다가 "내가 스토리 할 테니 네가 그려라", 같은 얘기를 한다.
 
마일로 하지만 결국 취향이 미묘하게 달라서 안 하게 된다.
 
 


<여탕보고서>에 대한 이야기
 
선우훈 부천만화대상 수상 소감을 다시 듣고 싶다. 시상식장에서 하는 것과 다를 것 같아서.
 
마일로 그냥 너무 이상하다. 상을 받은 게.
 

선우훈 댓글 보면서 인기를 실감하지 않았는지.
 
마일로 실감한다. 상을 왜 줬는지 열심히 생각하면 알 것 같기도 한데... 연재 끝난 지 1년 뒤에 상을 받아서 묘했다. 복잡한 심경.
 

선우훈 다른 인터뷰에서 봤는데, 살던 동네에 목욕탕이 그렇게 많았었다고.
 
마일로 사실 어릴 땐 동래구에 안 살았다. 대학교 입학 뒤에 이사한 거다. 내가 초등학생 때는 사람들이 목욕탕을 많이 가던 시대였다. 어릴 때 매주 다니고, 커서도 근처에 목욕탕이 많이 있으니 매주 가고 그랬다.
 

선우훈 그 경험을 만화로 그리게 된 계기는?
 
마일로 원래는 사극 만화를 그리려고 일 년간 준비를, 마음의 준비만 했었다. 그러다가 이래선 안 되겠다고 생각해 최대한 가벼운 만화부터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재밌는 주제를 찾으면서, 생활툰이랑 에세이가 섞인 보고서 형식의 만화를 그리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왠지 여고생에 대한 만화가 굉장히 많아서, 여고생에 대한 판타지를 깨 주는 만화도 생각했었고.

한두 달 생각하다가 불현듯 여탕이 생각났다. ‘여탕이라는 제목이 있으면 나라면 클릭해 본다!'는 느낌이 왔다. 그때 주제를 열 몇 개를 적어보고, 할 수 있겠다 싶어서 했다.
 

선우훈 그렇게 하니까 진짜 10화 안에 연재가 결정됐다.
 
마일로 역시 모두가 '여탕'을 클릭해 본 것.
 
박지연 사람들이 항상 여탕을 궁금해 하거나 여탕에 대한 신비주의적 묘사를 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여탕에 앉아서 여탕은 그렇지 않은데?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지. 아주머니들 폭포 맞으면서 커피 마시고.




 

 

<여탕보고서>는 여탕에 대한 판타지와 현실의 괴리를 다루면서 많은 호응을 받았다.






선우훈 모자이크 등 나체를 표현할 방법에 대해 다양한 스타일을 연구했다고 하는데.
 
마일로 작화 스타일을 연구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해보고, 모자이크로 가리기도 해봤다. 근데 그냥 피부를 안 칠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로카 모자이크가 다 들어가면 너무 이상하다.
 
마일로 사실 너무 이상해서 뺀 에피소드도 있다. 나체의 아줌마가 너무 편하게 누워 있는 것을 그리고 모자이크 처리를 했더니 진짜 이건 너무 아니어서.
 

선우훈 남성 독자가 많은데, 벗고 있는데 하나도 안 야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 점이 재미를 넘어 신체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긍정적인 면을 만들었다고 본다.
 
마일로 구상하면서도 그 생각을 했었다. 무슨 만평을 봤는데, 할머니가 목욕하는 장면이었다.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할머니 나체를 그려 놓은 거다. 그걸 보고 언니랑 얘기했었다. 뭔가 늙은 여자의...
 
박지연 탈 성애화라고 표현할 수 있지. 왜 늙은 여자의 신체는 드러내도 되는가.
 
마일로 그래서 '나체 여성은 꼭 성애적인 대상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나?' 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연재의 처음부터 끝까지 벗고 있는데 야하지 않아서 신기하다는 반응의 댓글이 달렸다.
 

선우훈 또 기억나는 댓글이 있는지?

마일로 웃긴 댓글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찜질방 주인인데, 이런 손님 짜증난다고 욕했다가 그 찜질방이 테러 당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 그 댓글을 삭제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어떤 댓글이었는지 볼 수 있게 계속 복사해서 올리고.
 
박지연 맞아. 어떤 커뮤니티가 형성됐던 것 같았다.

나는 남자애가 여탕에 들어오는 에피소드에 달린 댓글도 기억에 남는다. 그 만화의 내용은 여탕에 가는 입장에서, 꼬마 애라고 해도...
 
마일로 꼬마가 아니었어!
 
박지연 그래. 그러니까 '여탕에 다 큰 남자애는 데려오지 맙시다.'라고 만화에서 표현했는데 그걸 보고 어떤 엄마들이 화가 났더라. 어느 포인트에서 화가 나는지 잘 모르겠지만, ‘네가 결혼을 안 해봐서’, ‘네가 애를 안 낳아 봐서’ 그렇다는 댓글들이 달렸었다.



 

 
<여탕보고서> 3화 '여탕속 남자어린이'편의 장면들. "그냥 주말마다 아빠들이 좀 씻겨라"라는 베스트 댓글이 인상적이다.






선우훈 나도 기억난다. ‘아빠들이 데려가야 한다’ 등의 육아 문제가 나오는 게 아니라, 작가에게 '너는 젊어서 그래'라는 식의 반응.
 
박지연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게 이상했다. 무리한 요구도 아니었고, 기본적인 공중 매너를 지켜 달라고 했을 뿐인데.

미혼 여성이 그걸 표현했다는 이유로 기혼여성들이 화가 난 것인가. 미묘한 부분이다. 이해는 하지만 ‘네가 애를 안 낳아 봐서 그렇다’는 말이 먼저 나오면... 생각할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선우훈 그런 면에서 <여탕보고서>가 소비되는 방식이 좋았다. 작품 안에서 어떤 주장을 하는 건 아니지만 작품을 읽고 나면 뭔가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점에서. 그런 의미에서 진짜 ‘착한 페미니즘’같았다. 
 
로카 욕으로 들린다.
 
선우훈 욕으로 들리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박지연 그 안에서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다'라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니까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방금 얘기한 남아의 에피소드도, ‘이런 분들이 있다, 하지만 이건 원칙상으로는 안 되는 일이다’하고 상황을 제시할 뿐이고. 이 외에도 미묘한 부분들에서 비화된 이슈가 종종 있었다.
 

선우훈 남탕을 그려 달라는 요구도 많았던 것 같다.
 
마일로 메일로도 써서 보냈다.
 
로카 어떻게 그리라는 건지.
 
박지연 <여탕보고서>를 본 많은 남자들이 "여자가 이런 만화를 그릴 수 있을 리 없다", "남자 작가일 것"이라고도 말했다.
 
마일로 그건 개그 만화를 그리는 모든 여자 작가들이 듣는 이야기다. "이게 여자일 리가 없다."
 
박지연 나도 그랬어. 처음에 레이싱 만화 그렸을 때 여자가 그렸을 리 없다고.
 

선우훈 SNS 보면 '부치스럽게 머리를 잘랐다', 같은 표현도 하고. 이외에도 젠더에 관심 있 는 것 같던데.
 
마일로 그래서 <여탕보고서>를 그린 것 같다. 퀴어, 여성 문제에도 사실 예전부터 관심 많았다. 대학교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관심이 생겨서.
 

선우훈 패션 쪽에서 젠더 문제도 배우나?
 
마일로 그건 아니고, 세계 전통 복식에 대한 과목이 있었다. 발표를 해야 하는 파트가 이슬람 문화권의 전통 복식이어서 공부를 하다 보니 이슬람 여성 인권 책들을 봤다.

그런데 찾아보면 <이슬람 여성의 눈물>, <이슬람 여성의 슬픔> 막 이런 책밖에 없더라. 복식은 부르카, 히잡 등등.
 
로카 그 외의 전통 복식을 본적 있나?
 
마일로 없었다. 국가별로 다르지만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다 가린다. 파키스탄이랑 아프가니스탄 같은 경우는 망사로 가리는 부르카를 입는데, 보니까 많이 가리는 나라일수록 여성 인권이 낮다.
 
머리만 가리는 나라는 여자도 일을 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괜찮다. 전부 가리는 나라는 맨날 여자한테 염산테러하고. 하루에 염산테러 몇 건. 이렇게 나오고.
 
그 책을 읽고 나니까, 이게 이슬람만의 얘기는 아닌 거다. 그 책에서 인상 깊었던 일화가 있다.
 
어떤 이슬람의 여자가 대학에 가고 싶다고 남편한테 말하고 공부했는데 남편은 싫어했다. 남편이 싫어했는데 여자가 계속 공부하니까 남자가 여자 손가락을 다 잘라 버린 거다.
 
한국도 이 정도까진 아니지만 비슷하지 않나 생각했다.
 
박지연 머리를 밀어 버리기도 하고.
 
마일로 애를 낳은 여자가 대학에 가겠다고 하면 '네 꿈만 중요하고 가정은 안 중요하냐?'는 소리 들을 거고.
 
또 만화책 많이 보던 시절, <바쿠만>이라는 만화책을 보니 이상한 거다.
 
<바쿠만>에선 ‘여자가 공부를 너무 잘 하면 귀엽지 않아’, 같은 표현 나오고. 전교 일등 하는 여자애는 처음부터 끝까지 악역으로 묘사된다.
 
서브 주인공의 여자 친구도 충격적이었다. 좋은 남자친구를 구했으니 대학 안 가고 바로 주부될 준비를 하는 것이 너무 별로였다.

 
박지연 나도 대학 다니던 시절 관련 글을 봤었다. 유럽에선 이슬람의 복식에 대해 여성 인권의 억압이라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그들의 전통을 여성들 스스로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일로 그런 복장이 오히려 여성을 해방시킨다는 주장도 있었다. 유럽이나 미국 등지처럼, ‘섹시한 여비서’가 되어 지나다닌다면 남자가 군침을 흘리면서 쳐다볼 텐데 오히려 전통 복식을 입어서 여자가 자유로울 수 있다. 이런 얘기.
 
박지연 대학 다닐 때 여성인 친구가 딱 그런 얘길 했다. 복장이 여성을 억압한다는 내 생각이 잘못됐을 수 있다면서. 그 전통 복장은 그 여자들의 선택이고 성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그들을 도와주는 도구라고.
 
그때도 ‘그런가? 아닌데?’ 같은 생각을 했었다. 그 뒤로 몇 년 지나고 나서야 그 말도 완전히 틀렸단 생각을 하게 됐다.
 

선우훈 이런 고민들이 있어서 <여탕보고서>에 은근한 주제의식이 담겼구나 싶다.

한편 민감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교훈을 주려하지 않고 재미를 우선한 점이 인기의 요인이자 좋은 작품이 된 이유 같다. 차기작도 비슷한 작품을 구상 중인가?
 
마일로 그렇다. <여탕보고서>와 비슷한 느낌의 일상물 생각 중이다. 한편 BL도 하고 싶다.
 

선우훈 그러면 메인 포털에서 연재하기 힘들지 않나.
 
마일로 연재처에 말했는데 반응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BL 그리고 싶다고 얘기했더니 그럼 다시 메이저로 못 올 거라고. 그래도, 가지 말란 얘기니까.

 

 

인터뷰 <여탕보고서>의 마일로, <모멘텀>의 박지연 작가 끝 (인터뷰 ②로 이어집니다.)




YOUR MANAⒸ선우훈, 로카



 

 

<여탕보고서> (링크)
<모멘텀> (링크)

인터뷰 ② <여탕보고서>의 마일로, <모멘텀>의 박지연 작가(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