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로럼 프로히비토럼: 여자 인생을 망치는 책들①
(Librorum Prohibitorum: '금서'를 의미하는 라틴어)



꼭 읽지 말라는 것만 찾아 읽는 것들을 위하여  
 

에티앙

 

어떤 책이 금서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전제가 필요하다. 어쨌거나  파급력이 기대되는 내용이어야 한다는 것. 그렇게 금서로 지정된 책에는 적어도 한 가지 미래가 보장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쉽게는 잊히지 않으리라는 것. 
 
그래서 금서를 지정하는 목소리는 완강할수록 애잔하다. "내가 싫은 책이니까, 남들도 읽지 말라."는 식의 발상은 필연적으로 통제권을 열망함과 동시에, 영원히 상실하는 결과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지구 위의 누군가는 분명히 하지 말란 짓을 숨어서 하는 데에 같잖은 희열이나 사명의식 따위를 느끼며, 더 열심히 읽고 유통할 테니까.  

 

금서의 자격: 한국인 여자의 삶을 더 힘들게 하는 책들 
 

앞으로 내가 금지할 책들은 다음 특성 중 적어도 네 가지 이상을 지니고 있다.  
-순정만화 혹은 여성 만화로 분류된다. 
-폭력을 낭만화한다. 
-이분법적 젠더관을 대변한다. 
-백인우월주의적 가치관을 영속화한다. 
-경박하고, 비현실적이고, 자라나는 청소년의 성 정체성에 혼란을 주며, 강력범죄를 조장하는 데다 공부에 도움은 하나도 안 되는 책.
-내가 중고등학생 때 들고 있다가 뺏기거나 맞았던 책. 
-성숙한 여자라면 졸업해야만 하는 책.
-우리 조상님들을 생각하면 절대로 사서 봐선 안 되는 책, 그러니까 일본 만화(빌려 보거나 다운로드해 보는 건 일본에 이득이 안 되므로 괜찮다는 국사 선생님이 실제로 있었다).
 



신조 마유의 대표작, <패왕 애인>의 한 장면. 가난한 일본인 여고생이 자신을 강간한 홍콩 마피아와 사랑에 빠진다. 예를 들면 이런 책을 금지하자.



 

금서의 의의: 한국 여자가 살기 좋은 세상을 위하여 

 
이런 책들이 기필코 금지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여성 공동체로서 평등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합심하여 투쟁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편적이고 훌륭한 가치들, 예를 들면 평화, 애국심, 이성적 사고, 자유 의지 따위를 지지함으로써 현명하고 도덕적인 여성으로 인정받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가치들을 박탈당한 우리의 과거, 즉 무시당하고, 강간당하고, 낙태하고, 맞고, 착취당해온 역사는 우리가 능동적으로 극복해야만 할 비극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근대 이념으로서의 페미니즘 서사에 합류함으로써 우리가 꿈꿔온 인간다운 권위를 얻을 수 있다. 

 

여자 머리에서 나온 발상에 자기 검열이 빠지면 섭섭하죠 암요

과연 그럴까? 식민의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태어나 강간과 매춘을 밥 먹듯이 목격하고 경험하며 자란 '우리'도, 열심히 버지니아 울프와 주디스 버틀러를 읽으면, 당당하고 주도적인 여성으로서 행복한 삶을 쟁취할 수 있을까?
 
보편적 여성 공동체라는 건 뭐, 보지가 달린 사람들의 모임인가? 생물학적 생김새가 어떻든 자신을 여자라고 규정하는 사람들의 모임인가? 그러면 몸은 여자로 타고났는데 별로 여자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어떡하는가?  
 
어찌어찌 여성이라는 규격 안에 끼어 들어갔다고 치자. 같은 2차 세계 대전 동안 집에서 설거지하며 구릿빛 피부의 남편을 기다리던 여자와 그 남편에게 줄기차게 강간당하던 여자가 도대체 어떻게 공동체를 꾸린단 말인가? 못생겼는데 성격까지 나빠서 야오이나 그리는 것 외에는 삶에 낙이 없는 여자와 다이어트가 취미이고 시집 잘 가는 게 목표인 여자가 만나서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겠는가? 
 
기적적인 이타심과 소통 능력으로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한자리에 모여서 화합을 이루었다 치자. 그러면 우리는 '여자의 훌륭함'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될까? 인정은 누가 해주는가? 인정이 왜 필요한가? '훌륭함'은 애초에 누가, 왜, 어떻게 규정했는가? 백인 오빠들이 자기들의 우월함을 증명하려고 자기랑 다른 것들을 가려내다 보니 그렇게 된 것 아닌가? '훌륭함'은 사실적이고 정확한 신체 묘사, 오차 없이 계산된 투시, 기승전결의 구조가 확고한 서사, 즉 백인스러움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 아닌가? 
 
백인 남자의 인정 따위 더는 필요로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면 한국인 여자의 인정은 뭐가 다른가? 애초에 여자도 인간이라면 왜 못되고 멍청하고 이기적이면 안 되는가?  
 
무시 받고, 강간당하고, 낙태한 역사는 왜 극복되어야만 하는가? 술집에서 붙은 시비로 입술이 찢어지도록 맞은 남자가 트라우마 때문에 술을 입에 못 대게 됐다는 이야기는 없는데, 왜 꽐라 상태로 모텔에서 강간당한 여자는 물리적 고통이 없는 경우조차 펑펑 울며, 펑펑 울 것을 사회로부터 기대/요구받는가? 천편일률적인 피해자 서사의 생산과 소비 끝에 피식민자는 무엇을 얻는가? 가식민자는 무엇을 얻는가? 
 
동양인 여자는 페미니즘을 할 수 있을까? 우월하신 백인 언니들이 우리를 받아줄까? 평등과 자유 의지는 명백히 훌륭한 개념이며 언제나 모두에게 훌륭하기만 했을까? 평등 사회를 꿈꾸며 식민지를 건설한 북미 이주자들은 원주민들과 아프리카인들에게 무슨 짓을 했나? 18세기 프랑스의 혁명가들이 자신들의 자유 의지를 지키기 위해 가장 먼저 공격한 대상은 코르셋 입기를 거부한 왕비가 아니었나?
 
페미니즘은 그렇게 만들어진 인권(즉 눈곱만큼의 자기 검열조차 하지 않을 권리)을 얻기 위한 투쟁인가? 우리가 페미니즘으로부터 구원을 바라는 마음은 미군 부대 앞에서 초콜릿을 줍는 어린이의 마음과 정확히 뭐가 다른가? 가식민자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이념이 피식민자의 삶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까지 제 3물결, 제 4물결 페미니즘 담론으로 입양 보내버리면 우리에게는 뭐가 남는가? 뉴욕과 파리의 힙스터들이 가야트리 스피박과 프란츠 파농을 놓고 토론을 벌일 때 서울의 대학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내가 강간당한 얘기할 땐 들은 척도 안 하던 인간들이 나라 팔린 얘기만 나오면 신나서 순수한 소녀들이 유린을 당했고 어쩌고 하는데, 왜 그에 대한 죄책감과 공포까지, 심지어는 극복하려는 노력까지 내 몫인가? 왜 나는 딸 칠 때조차 우리 조상님들 생각해서 숙연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어차피 강간으로 태어나서 남은 평생 쉴 틈도 없이 강간만 당할 인생이라면, 아랫목에 누워서 망가 보면서 딸이나 치는 게 왜 나쁜가? 남의 등쳐먹고 살기에도 간당간당한 마당에 왜 온 누리의 평화를 위하여 애써야만 하는가? 




 

‘사치의 아이콘’ 마리 앙투아네트(좌)는 화려한 베르사유의 생활을 피해 거의 칩거하다시피 하며 하얀 모슬린 드레스만 입었다. 코르셋을 하지 않고 아무런 장신구도 걸치지 않은 초상화는 ‘왕비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살롱에서 퇴출당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혁명기의 정치 풍자만화 속 마리 앙투아네트(우)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거울을 보며 리본을 다듬는 모습이다.




 

어차피 망할 인생 

그러니까 이 금서 목록은, 내 인생에 약속된 다른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실패를 전제로 한다.  
이유는 너무 간단하다. 백인 남자가 자신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것에 허락한 권위는 너무나도 한정적이고, 우리는 그 한정된 공간 속에서 조금이라도 자기 자리를 넓히기 위해 머리채 잡고 싸워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식민 지배를 받은 동양의 소국이 자신에게 남은 털끝만큼의 품위라도 유지하기 위해 자기보다 더 작은 동양의 나라들을 지배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나는 동양인 여성 문화를 연구하고 번역해서 백인 오빠들이 알아듣기 쉽게 포장하는 일을 하지 않고서는 지성체로서의 생존이 불가능한 위치에 놓였다. 제일 잘 돼봤자 백인 남자 등쳐먹거나 다른 한국인 여자 팔아넘겨서 먹고 살아야 하는 인생이라면 뭐하러 애써서 성공 따위를 하겠는가? 나의 삶은 그 망할 놈의 아편 전쟁과 경술국치 덕분에 태어나기도 전부터 실패가 예정되어 있었던 거다!  
 
 
어차피 만화책 같은 거 추천해봤자 아무도 안 읽는다! 웬만큼 제정신인 여자라면 하버드도 아니고 이제 겨우 스물 중반 넘은 동양인 계집애가 만든 추천 도서 목록 따윌 왜 뒤지고 앉아있겠는가! 

 

 

다 됐고 딸이나 치겠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는 질문에 나는 거의 언제나 <대부> 시리즈라고 대답한다.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반응은 ‘너같이 교육받고 자주적인 유색인종 여성이 어떻게 그런 조폭 영화를 좋아하냐’다. 아니 그냥 보고 있으면 존나 꼴려서 좋던데요 뭐 어쩌라고요.






어차피 뭘 해도 망할 거면 그냥 내가 꼴리는 걸 하자. 나는 ‘리코셰’라는 말을 좋아한다. 
 
리코셰는 사격 용어로, 표면에 부딪혀 의도치 않게 튕겨 나간 총알을 뜻한다. 보통 총을 쏜다는 행위는 사냥이나 처형, 반란처럼 뚜렷한 목적에 수반된다. 사격은 근대 사회에서 명백하게 능동적이고 남성적인 의미를 지닌다. 자아와 타자, 공격과 방어, 피해와 가해, 능동과 수동이라는 이분법을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은 서양이 규정한 근대 바깥의 장소에도 존재한다. 편리한 근대적 이분법에 균열이 갈 때 그 틈새에서 많은 기적이 일어난다. 세일러복을 입은 해군들에게 점령당했던 나라 사람들이 이제는 세일러복이 야하다고 난리다. 19세기 미국 해군의 폭력과 협박을 통해 수입된 우키요에를 보고 베껴낸 결과물이 인상주의인데,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미술 양식도 인상주의다.
 
나는 맨 처음 리코셰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게 무슨 프랑스 디저트 이름인 줄 알았다. 말이 너무 예뻐서. 언어적 합의를 보지 못한 사람들끼리 서로 소리 지르는 꼴이 원래 제일 구경하기 즐겁다.
 
그러니까 캡틴 아메리카가 목숨까지 버려가며 나라를 구했어도,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는 그가 나치 장교에게 강간당하는 상상을 하며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얻곤 하는 것이다(나는 그가 아주 고통스럽게 유린당하면서도, 자신이 미처 몰랐던 놀라운 기쁨에 압도되어 엉엉 울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사랑하느라 다른 무언가를 증오하기로 마음먹지만, 결국 그 어떤 언어도 타인을 완벽히 통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마당에, 이미 빗겨나간 총알의 궤도, 즉 실패의 역사에 대해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젠더나 섹슈얼리티 같은 말이 없던 시절에도 동양인 여자들은, 아니 세상의 거의 거의 모든 여자는, 동성애도 하고, 매춘도 하고, 성전환도 하고, 자위도 하고, 말대답도 하고, 아무튼 하지 말란 짓들은 다 했다.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모를 때도 나는 오빠가 나보다 세뱃돈을 더 받을 때마다 거실 바닥에 엎어져 악을 써가며 똑같이 받아냈다. 그건 내가 특별히 인권 의식이 투철해서가 아니라 그냥 이기적이고 말이 안 통하는 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떤가. 나는 그 역사를, 자기도 강간당했으면서 딸 칠 때마다 세일러문 강간당하는 상상을 하던 일곱 살의 나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래서 뭘 어쩌고 싶은 거냐고(자 울지 말고 또박또박 말해봐)
 

나는 사랑하는 남자가 방아쇠를 누르는 모습을 계속해서 구경하기로 했다. 
 
그가 하는 일이 남성성 과시인지, 생계유지인지, 정의 실현인지, 나는 모른다. 그의 사격이 여자에게, 유색인종 여자에게, 트랜스 여자에게, 레즈비언 여자에게, 생물학적으로 여자의 몸을 타고났지만 스스로 여자라고 규정하지 않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나는 너무 멍청하고 게을러서 잘 모르겠다. 그냥 그 남자의 살짝 찌푸린 눈썹이 좋고, 두꺼운 손가락이 좋고, 반복해서 울리는 타격음이 좋다.  
 
그렇게 구경하다 보면 나는 어느샌가 방아쇠를 누르는 게 나라고 믿게 된다. 이게 딸인지 섹스인지 강간인지 더는 분간이 안 가는 지점에 도달하고 만다. 나는 스물일곱이나 먹었지만 여적지 섹스와 강간을 쉽게 구분하지 못한다. 역사 공부를 아무리 해도, 과거를 아무리 곱씹어도, 내가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모르겠다.  
 
내가 그 남자를 사랑하는 게 정말로 그 남자를 사랑하는 건지, 아니면 그 남자를 사랑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여자애들의 사랑이 좋은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나는 그냥 그 남자가 되고 싶어서, 하루라도 그 남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어서, 그 남자를 사랑하는 척 엉겨 붙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근데 뭐, 모를 수도 있지. 세일러문 백날 봐봤자 초승달이랑 그믐달도 제대로 구분 못 하는데. 그러니까 읽어봤자 사는 데 하나도 도움 안 되는 책들은 금지하는 게 옳다. 


 

YOUR MANAⒸ에티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