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로럼 프로히비토럼: 여자 인생을 망치는 책들②
(Librorum Prohibitorum: '금서'를 의미하는 라틴어)

 

슈가슈가 룬
소녀들은 어쩌다 몸을 팔게 되었나?

 

에티앙
 

안노 모요코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슈가슈가룬>은 여자를 싫어하는 작가가 10살 먹은 소녀들의 매춘을 소재로 그린 만화다. 그러니까 당연히 금지해야 마땅하지.

 

남녀관계는 상업 활동, 여자의 사랑은 범죄! 

 

<슈가슈가 룬>은 두 꼬마 마녀가 마계의 여왕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경쟁의 내용이 좀 이상하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남자가 자기를 사랑하게 만들어서 '하트'(사랑의 결정체)를 쟁취하는 쪽이 이기는 거다.
 
여왕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바닐라와 쇼콜라는 성격이 완전 딴판이다. 쇼콜라는 '고집이 세고, 제멋대로고, 약간 심술궂고, 무서운 걸 모르는' 성격으로 마계에서 인기를 누렸지만, 인간계 남자아이들에게 냉대를 받는다. 숫기 없고 눈물 많아서 항상 무시당하던 바닐라는 '얌전한 아이'를 선호하는 인간계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다.
 
<슈가슈가 룬>에서 '사랑'은, 확실히 손에 잡히며 수치화가 가능한 물질이자 재화다. 감정의 급에 따라 '하트'의 가치가 달라지며, 보다 값비싼 하트를 많이 얻어야 마법 도구도 살 수 있다. 그렇게 쌓인 하트의 총 가치를 환산해 이기는 쪽이 여왕 자리를 얻는다.
 
한술 더 떠, 인간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마녀는 천 년의 저주를 받는다. 그러니까 아직 열 살 밖에 안 먹은 이 여자아이들은, 어떻게든 남자를 꼬셔내되 절대로 사랑에 빠져서는 안 되는, 부조리하기에 더 있음직한 상황에 처했다.



 

꼬마 마녀들은 남자의 환심을 물질로 인식한다.
 

 

 

매춘이지만 합법이라고요?! 

 

바닐라와 쇼콜라가 마주한 인간계의 현실은 진짜 인간 세계의 현실과 퍽 비슷하다. 여자가 결단력이 있고, 자유분방하고, 부당함에 대응할 줄 알고, 용감해서는(즉 '고집이 세고, 제멋대로고, 약간 심술궂고, 무서운 걸 모르는') 남자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순진하고 멍청한 여자는 사랑받는다.
 


인간계 남자들은 ‘심술궂고 무서운 걸 모르는’ 여자보다 ‘얌전한 아이’를 선호한다.





그런 세상에서 여자는 남자에게 인정받지 않는 한 권력을 얻을 수 없다. 결국 여자는 최대한 ‘남성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자신’을 연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근대가 규정한 '훌륭한 시민'의 자아는 애초에 여자에게 허락된 선택지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긴 마녀는 천 년 동안 자신의 '모습을 박탈당한다.' 이분법적 젠더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남자에게 자신의 본 모습을 내놓은 여자가 받는 형은 자아의 말살이다.



 

인간에게 사랑을 느낀 마녀는 자격을 박탈당하고, 단 하나뿐인 하트를 빼앗겼을 때는 죽는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자는 사랑보다 매춘을 택한다. 쓸데없이 진심을 보였다가 욕 처먹고, 인기도 없어지고, 여왕도 못 되느니 수단 방법 안 가리고 하트나 많이 모으는 게 나으니까.
 
여자아이들은 구조를 깨부수는 대신, 서로 머리카락 쥐어뜯고 싸우며 우위를 점해야만 한다. 바닐라와 쇼콜라는 어린 여자아이들이라서, 인간계 돌아가는 꼴이 왜 그 모양인지, 인간 남자의 사랑 따위가 여왕의 역량이랑 무슨 상관인지, 질문할 줄도 모른다.

 

안노 모요코는 어떤 여자인가 

 

2013년, 뉴욕 코믹콘에 초청받은 안노 모요코는 기모노를 입고 등장했다. 그야말로 서구 사회가 일본인 여성 작가에게 바라는 이미지 그 자체다. 안노 모요코는 어쨌거나 일본인 헤테로 여성을 연기하는 데 능숙하다(그녀가 어디까지 진심인지는 영원히 모른다). 안노 모요코는 <뷰티 마니아>라는 메이크업, 패션 전문 만화 에세이를 출간했을 만큼 꾸미는 데에 관심이 있다.
 
<뷰티 마니아>가 제시하는 아름다움의 정의는 엄청나게 한정적이다. 조금이라도 눈이 커 보이게 하는 메이크업, 피부를 하얗게 해 주는 화장수 등. '미용 친구'와 다이어트 정보를 공유하며 '털은 다 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슈가슈가 룬> 1권, '작가의 말'을 보면 심지어 다이어트가 취미라고.
 
그녀가 여자를 묘사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20세기 서양 패션 일러스트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일본 소녀 만화의 전형을 따른다. 즉 마르고, 하얗고, 눈이 크고, 턱이 갸름하고, 입이 작은 여자들이 ‘기본형’이다. 안노 모요코의 세계는 백인적 특질만 과장된 인형으로 가득하며, 그 작은 울타리를 벗어난 여자는 무조건 못생겼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토록 열심히 사회가 바라는 헤테로 여자를 연기할 거라면, 도대체 왜 완전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까? 왜 자신의 물밑 발길질을 숨기기는커녕 더 자랑하려고 난리일까? 자기가 화장하기 전에 얼마나 '못생겼었'는지, 여자가 예뻐지는 과정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지,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얘기하지 못해서 안달일까?
 
안노 모요코는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편집증적으로 악착스러운 여자를 묘사할까?


 

하트는 곧바로 재화로 환산되고, 꼬마 마녀들은 그렇게 모인 재화로 경쟁에 도움이 되는 물건들을 구입할 수 있다.



 

안노 모요코는 어떤 여자를 그리는가 

 

안노 모요코는 아주 꾸준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서 수단 방법 안 가리는 여자들을 그려왔다. 사회는 그런 여자들을 ‘재수 없는 년’, ‘잘난 척 하는 년’, ‘레즈비언(왜일까?)’, ‘페미니스트’ 혹은 ‘창녀’라고 부른다.
 
<해피 매니아>는 멍청하고 게걸스러운 여자가 어떻게든 섹스 한 번이라도 더 하려고 발악하는 내용이고, <워킹 맨>은 섹스 좋아하고 잘난 여자가 어떻게든 직장인 사회에서 살아남으려고 발악하는 내용이며, <지방이라는 이름의 옷을 입고>는 섹스 좋아하고 뚱뚱한 여자가 어떻게든 남자의 관심을 얻으려고 발악하는 내용이다.
 
안노 모요코의 여자들은 어쨌거나 남자의 사랑과 관심을 절실하게 욕망한다. 욕망의 배후에 있는 것이 남자에 대한 이성애적 사랑인지, 여성 커뮤니티로부터의 인정인지는 모른다. 아무튼 그녀들에게는 주변 여성들의 시선이 치명적이도록 중요하다.그녀들은 정말로 그냥 여자가 좋았던 걸지도 모르지만, 안노 모요코는 이성애적 구조 바깥의 이야기를 철저하게 배제한다. 가끔 가다가 ‘치명적’으로 묘사되는 동성애자 캐릭터가 존재할지는 몰라도.

이렇게 안노 모요코의 여자들은 이성애자들이 만든 세상에서 서로 헐뜯고 질투하다가 분노하고 울고 헐값에 팔려간다. ‘왜 세상이 이렇게 되었는가?’, ‘이 세상을 고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생산적 행동을 취할 것인가?’ 같은 생각은 좀처럼 안 하는 것 같다.




 

안노 모요코는 어떤 여자로 읽히는가 

 

다시 코믹콘 인터뷰(링크)로 돌아가자. 미국인 인터뷰어는 계속해서 안노 모요코에게 여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런 질문들은 서구 모더니즘적인 작가관, 즉 작가가 어떤 대상을 소재로 삼는 데에는 당연히 뚜렷한 정치적 의도가 필요하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여성 독자로서... 당신의 작업을 볼 때 제가 가장 흥미를 느끼는 부분은 여성 인물의 강점과 약점, 그리고 그녀들이 살아남기 위해 감내해내야만 하는 일들입니다. 작가로서 그런 정직성에 도달하기가 어렵지 않으신가요?"
 
기모노를 입은 안노 모요코가 대답한다.
 
"나는 언제나 스스로의 감정을 정확히 인지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렇게 해야 한다'고 정해진 것을 생각 없이 따르며 살고 싶지는 않아요... 그리고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에게 "왜 그랬을까?"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대답 속의 안노 모요코는 '여성으로서의 자신'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자신'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인터뷰어가 스스로를 명확히 '여성 독자'로 소개하며 '여성 인물'을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억압적인 일본의 현실과 그 속에서 생존해야만 하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선뜻 꺼내지 않는다.
 
인터뷰어는 이어서 안노 모요코가 자신의 캐릭터 중 누구를 가장 좋아하는지 묻고, 안노 모요코는 두 명의 남자 캐릭터 이름을 댄다.
 
"여자 캐릭터는요? 혹시 너무 어려운 질문인가요?"
"전 여자 별로 안 좋아해요!"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어떻게 조명하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또 이렇게 대답한다.
 
"전 언제나 '어떻게 하면 이 남자를 속여 넘길 수 있을까'를 생각해요."
 
 
인터뷰어는 빼도 박도 못하게끔 명확한 언어로 포스트 모더니즘적 페미니즘 서사를 언급한다.
"<사쿠란>은 한 여성의 삶을, 연속된 서사보단 단편적인 장면들로 나열합니다. 왜 그런 선택을 하셨죠?"
 
흔히 '남성적'이라고 여겨지는 직선적 내러티브를 거부한 이유를 묻는 것이다. 하지만 안노 모요코는 쉽게 원하는 답을 내어주지 않는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첫 화를 그리고 나니까,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보여주지 않으면 캐릭터를 완전히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과거로 돌아갔죠."
 
그렇게 인터뷰어가 바라는 것과 안노 모요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어긋나면서 인터뷰는 서서히 망조를 보인다.
 
"이야기의 처음과 마지막을 뒤바꾼 이유도 궁금하네요. 어떤 생각을 거치셨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처음 생각난 부분부터 시작해서 스토리를 이어 나갔습니다."
 
작가가 자기 작업 과정에 대해 ‘잘 모르겠다’니. 안노 모요코는 북미 인터뷰어가 기대한 것만큼 강인하고 명석한 여성 작가가 아니었던 거다.
 
"작가로서 앞으로의 여성 만화에 어떤 것들을 기대하시나요?"
"...고연령층 여성을 위한 만화는 많지 않죠...사람들은 대부분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고 싶어 하니까요. 그게 자연스러운 거고요... 나이 많은 여성들을 위한 사실적인 로맨스물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안노 모요코는 노인 차별적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함과 동시에 '사람들이 영원히 젊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다'는 발언으로 독자에게 혼란을 준다. 그러니까 늙음을 긍정하고 싶은 건지, 부정하고 싶은 건지, 늙은이들을 상대로 장사가 하고 싶은 건지, 영원히 모를 일이 되어버렸다.
 
어쨌거나 안노 모요코는 끈기 있게 침묵하고, 회피하고, 일반화해서 말한다. 주구장창 여자 이야기만 해온 작가가 "전 여자 별로 안 좋아해요!"라는데, 거기다 대고 무슨 진실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어쨌거나 살아남기 

 

 
바닐라와 쇼콜라에게 구조를 해체하는 게 별로 의미가 없는 것처럼, 안노 모요코도 북미 페미니즘에 의탁해서 얻을 것이 별로 없다고 느꼈는지 모른다(물론 페미니즘적으로 해석해서 판매량을 올려주신다면 아리가또다).
 
바닐라와 쇼콜라는 살아남기 위해 사랑을 판다. 안노 모요코는 그런 만화를 그려서 판다. 동양인 여자는 일단 눈이 크고 피부가 하야면 먹고 살기가 그나마 좀 편해지며, 서양 국가를 방문할 땐 자기가 동양인이라는 걸 전면적으로 어필하는 게 효과적이다. 같은 여자라고 굳이 사이좋은 척하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찍어 눌러서 나를 위협하지 못하게 만드는 게 생존에 더 적합하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나'라는 질문에는 많은 대답이 가능하다. 일본의 패전 콤플렉스와 문화제국주의 때문이다. 그러니까 여전히 모든 게 백인 오빠들의 잘못이다.
 
제국주의적 세계 질서 속에서 영원히 타자일 수밖에 없는 일본 남자는 구조에 이의를 제기하는 대신, 옆집의 더 나약한 누군가를 때리는 걸로 생존을 허락받는다. 그러면서 일본이 '근대적 자주 국가'임을 증명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자국 여성들, 즉 자국의 미래를 책임질 주요 자원이 조금이라도 더 백인 여성과 닮기를 바란다.
 
일본 문화는 '피식민'과 '가식민'이라는 양가적 아이덴티티를 지니기 때문에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 어디를 맞아야 진짜로 아픈지를 너무 잘 아니까 더 잘 때리는 것이다. 그래서 안노 모요코는 더 혹독하게 아름다워질 수밖에 없고, 제한된 권력에 대한 지독한 열망을 담은 만화가 일본에서 잘 팔린다.
 
그런 사회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야만 하는 안노 모요코이기 때문에 여자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할 수도, 혹은 몇 십 권 어치 만화를 그릴 만큼 사랑할 수도 있다. 그 모든 담론이 “여성의 인권을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해요!” 따위의 교과서적인 말로 일축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안노 모요코의 말보다는 안노 모요코가 하지 않은 말들이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그녀의 침묵은 어떤 의미로는 서구 페미니즘에 대한 수동적 거부이다. 어쩌고저쩌고, 블라블라.

 


 

그녀에게 진심을 요구하지 말아요 
 

이런 말이 다 무슨 소용인가? 내가 그걸 왜 알아야만 할까? 안노 모요코 자신도 모르거나 모르는 척하고 싶어 하는 일들을 왜 내가 굳이 알아내서 누군가에게 알려야만 할까? 안노 모요코는 어쨌거나 유명 작가이고,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예쁜데 시집도 잘 간 (안노 히데아키라고, 일본의 유명 감독과 결혼했다), 한마디로 '성공한 여자'다. 그 이상의 진실을 가져다가 뭐에 쓰는가?
 
그렇게 능력 있고 매력적인 인간의 모든 선택이 백인 남자가 장악해온 역사의 잔상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가 일본인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어차피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지는 영원히 모를 일인데. 나는 2013년 뉴욕 코믹콘의 인터뷰를 직접 목격하지 않았다. 인터뷰는 분명 통역을 통해 진행되었을 텐데, 나는 일본어 원문(안노 모요코의 인터뷰)의 영어 번역본(인터뷰어가 기록한 내용)을 읽은 한국인이다. 심지어 같은 한국어로 말해도 말이 안 통할 때가 부지기수인데 무슨 수로 남의 나라 말을 알아듣겠는가.
 
삶과 역사의 아주 많은 부분이 지금도 신나게 왜곡되고 있다. <슈가슈가 룬>의 일본인 여자아이들이 바비 인형보다 더 큰 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안노 모요코가 계속해서 '헤테로 여성적 아름다움'을 욕망함과 동시에 그 욕망의 더러운 속사정을 편집증적으로 전시하는 것처럼, 백인 사회의 바람대로 기모노를 입고서는 그들이 원하는 페미니즘적 담론에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는 것처럼.
 
'진심'이라는 게 실재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영원히 안노 모요코의 진심을 읽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절대로 <슈가슈가 룬>을 읽지 말자. 여자를 좋아하지도 않는 작가가 그린 만화가 아닌가. 창녀가 달리 창녀냐,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막 그러는 게 창녀지.

 

 

 

YOUR MANAⒸ에티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