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여중생A
아이들은 즐겁고, 소녀들은 성장한다

 

오혁진







소설에서 ‘청소년 소설’이라는 영역이 있다. 정의해보면, 성인과 구별되는 청소년만의 독특한 감정과 정체성을 표현한 소설이다.
 
만화의 경우 ‘청소년 소설’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명칭은 없다. 대신 ‘청소년 소설’ 용어에서 주는 교육적 느낌을 벗겨내면, 상당 부분 겹치는 만화는 있다. <연놈>, <연애혁명>, <프리드로우>같이 10대 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
 
지금 소개할 <여중생 A>(작가 허5파6, 네이버 연재) 역시 이러한 흐름의 만화다. <여중생 A>는 중학생 소녀의 성장 이야기다. 그녀는 가정폭력으로 현실에서 도피하지만, 이후 많은 사람과 소통하며 성장한다.
 
<여중생 A>는 10대 청소년의 삶을 그린다. 재현의 문제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현실감 있는 주인공은 동시대성을 경험하게 하며, 감정이입을 용이하게 만든다.
 
충실한 재현은 그 자체로 한시대의 기록이다. 그렇지만 재현이 청소년 만화의 궁극적 목적이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재현 이후 무엇을 이야기하느냐다. 10대가 겪을 법한 내면의 모습과 그들의 예민한 감수성으로 바라본 사회 모습을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청소년 만화의 개성은, 10대 청소년을 어떻게 재현했는지와 함께, 그 재현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하느냐에 달렸다.


 

과거로 현재를 이야기하다

<여중생 A>의 시대적 배경은 2000년대 초중반이다. 작품 내적으로는, 이 시기를 택한 특별한 이유가 없어 보인다. 다만 허5파6 작가의 전작 <아이들은 즐겁다>를 고려하면, 2000년대 초중반이 작가의 청소년기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작가는 무리하게 현재 10대의 삶을 재현하기보다, 자신에게 익숙한 2000년대 10대의 삶을 그려냈다.
 
그렇다면 <여중생 A>는 복고적 작품인가? 작품을 들여다보면 시대를 명확히 인지하기란 쉽지 않다. ‘크라잉넛’, ‘달빛요정 역전만루홈런’의 음악이 등장하긴 한다. 하지만 그것은 시대를 드러내기보다, 차라리 주인공 ‘장미래’의 취향을 드러내는 기표로 작용한다. 게다가 간결한 그림체는 작품의 시간적 배경을 더욱 모호하게 만든다.
 
<여중생 A>는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과거를 복원하는데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아련한 과거를 추억하기보다, 바로 이 순간 ‘현재’를 이야기한다. 시간의 여백에 현재 동시대적 사건을 채워 넣는다. 특히 가정폭력, 여성 혐오 같은 여성 문제를 청소년 서사 내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과거의 기표인 휴대폰 메시지에는, 현재의 생생한 경험이 빼곡히 적혀 있다.
 
‘코스프레 촬영’ 에피소드를 보자. 미성년 여학생, 사진작가 성인남성이 등장한다. 이야기는 적정한 선에서 마무리되지만, 최근 불거진 ‘#오타쿠_내_성폭력’을 연상시킨다. ‘아이피녀’ 에피소드 또한 ‘학교 폭력’, ‘여성 혐오’, ‘사이버 불링’을 생생히 보여준다. 피해자를 배제하고 폭력을 가하는 양상, 진실과 상관없이 작동하는 인터넷 여성혐오, 이 모든 것은 바로 현재 우리들의 이야기다.





<여중생 A>는 ‘일진’재현에 관한 윤리 문제를 제기한다.


최근 ‘일진’을 다루는 웹툰은 성찰 없이 소재주의적 경향을 보인다. 창작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특정 의미를 전달해야 한다.

<여중생 A>의 ‘아이피녀’ 에피소드가 보다 흥미로운 것은, 메타적 시선으로 재현에 관한 윤리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이다. 현재 웹툰 인기 순위를 보면, 학원물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이 작품들은 10대의 생태와 감정을 리얼하게 재현하지만, 한편으로 일진 미화의 비판에 자유롭지 못하다.

‘일진의 위치는 학교 내에서 높은 계급을 가리키는 지표이며, 남성 캐릭터는 ‘일진’이 갖는 특유의 분위기나 말투, 외형을 매력 포인트로 갖는다' (IZE, 지금 10대 소녀의 ‘일진’ 판타지)(링크).

가령 웹툰 <연놈>의 경우, 일진만화를 표방하지 않지만 주인공의 거친 말투와 행동은 일진에서 고스란히 옮겨왔다. 마치 일진의 관점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미화한 듯한 작품이다.
<여중생 A> 장미래 역시 처음에는 자신의 소설에서 ‘일진’을 스타일로 소비한다. 하지만 그녀는 곧 일진의 폭력을 목도하고 일진을 미화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에피소드가 마무리될 시점, 혹시 있을 ‘일진’에 대한 감정이입을 또 한 번 방해한다. 장미래는 자신과 친한 ‘김유리’를 상기하며, 아래처럼 착한 일진을 단호히 거부한다.
 
“만약 그때 괴롭히던 애가 자신이 아니었다면 김유리는 말리지 않았을 거고, 그건 결국 가담 행위와 마찬가지다. 자신이 직접적인 괴롭힘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일진을 착하다고는 할 수 없다. 착한 일진은 정의로운 조폭만큼 이상한 말이다.”


 

여성 연대를 통한 성장

<여중생 A>가 유사한 다른 작품과 가장 구분 짓는 요소는 ‘성장’이다. 대다수 10대 남성 주인공은 성장하기보다 일진 세계 내에 맴돈다. 그것은 성장이 작품 기반인 세계를 무너뜨리고, 지금까지 허용됐던 주인공의 폭력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반면 <여중생 A>는 이야기 초반 주인공의 목표가 뚜렷하다. 게임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이동해야 하며, 이를 통해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성장해야 한다. 처음 장미래의 성장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은 학교 친구 ‘이태양’이다. 장미래는 게임 캐릭터를 닮은 이태양을 짝사랑한다. 그녀는 더욱 적극적으로 행동하며, 점차 현실 세계로 눈을 돌린다.
 
지금까지의 전개는 순정만화 흐름과 유사하다. 사랑은 중요한 감정이고, 이태양은 그런 그녀에게 위안을 준다. 하지만 <여중생A>는 갑작스레 두 사람의 관계를 퇴장시킨다. 이태양의 관심은 동정이었음이 밝혀지며, 게다가 그가 좋아하는 사람은 같은 반 친구 ‘이백합’이다. 바로 이 지점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든다.
 
단순한 짝사랑의 실패가 아니다. 이후 이어질 여성 연대의 전조다. 장미래의 성장에서 ‘남성’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여중생 A>는 여성의 성장 서사다. 많은 여성과 소통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며,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꿈꾼다.






‘장미래’에게 친구는 성장의 위한 첫 단계다. <여중생 A>는 우정을 섬세히 그려낸다.


먼저, 장미래와 관계 맺는 첫 번째 여성은 같은 조 여학생들이다. 사람을 게임으로만 만났던 장미래에게 관계 맺기란 힘겨운 행위다. 순간순간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당혹해 한다. 독자가 응원하는 순간인데, 마침내 그녀는 친구라는 공동체에 편입된다.

식사를 함께하고, 화장실을 같이 가고, 친구 집에서는 여성만이 공유할 수 있는 대화를 나눈다. 지금까지 그녀는 남자와 더 잘 통한다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녀는 이전까지 동성 친구와 충분한 교감을 나눌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이백합' 에피소드는 강요된 여성상, 남성의 일방적인 행동 등의 여성 억압을 보여준다.



아직 ‘우정’만으로 여성연대를 주목하는 건 미흡하다. 우정은 자연스러운 인간관계에 가깝다. 다음 ‘이백합’의 경우를 보자. <여중생 A>의 대부분 학생의 얼굴은 점과 선으로 단순화되어 있다.

역할 비중 문제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장미래의 친구 같은 조 학생은 중요한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화되어 있다. <여중생 A>는 단순히 비중보다는 장미래와 직접 갈등을 만드는 인물에게 표정을 부여한다.

백합은 초반 갈등을 야기하는 캐릭터이며, 장미래와 함께 가장 많은 감정 표정을 가진 캐릭터다.
 
이백합은 장미래가 이태양을 좋아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와 사귄다. 심지어 자신은 이태양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삼각관계의 전형인 ‘여자의 적은 여자’ 구조다. 여기서 최악으로 치달을 것 같은 관계는 극적으로 전환된다. 갈수록 '한남'의 모습을 보이는 ‘이태양’은 관계에서 배제된다.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두 사람은 비록 더디지만 힘겹게 소통을 이어간다. ‘글쓰기’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지 못할 뿐 남성 사회의 여성 억압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여중생 A>는 이백합의 관계를 통해 여성의 연대를 분명히 드러낸다.



여성의 연대는 장미래의 해체된 가족을 통해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장미래의 아버지는 가정을 돌보지 않고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어머니는 가정폭력과 고된 노동으로 딸 장미래와 감정적 교류를 나누지 못한다.
 
이전까지 장미래는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분노해야 할 대상을 명확하게 인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장미래는 여전히 속마음을 나누지 못하지만, 어머니를 점차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이 시점에서 <여중생 A>는 아버지, 어머니, 나라는 억압적인 가족 구도를 벗어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같은 가족 서사의 재구성은 청소년 문학에서 자주 범하는 가족주의 회귀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녀는 이제는 장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끔은 완벽한 가족 구성원에 대해 생각한다. 모든 구성원 존재가 행복한 가정의 필수 조건일까? 이보다 더 완벽한 평화는 없는데.”


 
장미래를 응원하는 이유

왜 항상 성장은 소년의 몫인가? 소녀를 위한 성장 서사가 없다. 재현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주인공을 여성으로 바꾸는 것, 즉 여성의 성장을 재현하는 것은 그 자체로 서사를 변화시킨다.
 
남성 성장 서사와 달리, 여성 성장 서사는 자아 정체성과 성적 정체성 확립이라는 이중의 책무를 지닌다. 여성 성장소설 정의에서 확인할 수 있듯, 이는 가부장적 사회질서 안에서 여성이 겪어야 하는 여러 문제적 상황들을 필연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여성성에 대한 사회·문화적 의미를 재고하게 한다.


 

<여중생 A>의 희망은 판타지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인간의 믿음과 더 나은 세계를 발견한다. 희망은 장미래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필요하다.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여성 성장 서사’가 수동적인 피해자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분명 갈등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가정폭력이라는 압도적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여중생 A>는, 그래서, ‘희망’이라는 판타지를 사용한다. 게임 세계같이 화사한 ‘현재진’, ‘현재희’ 남매가 등장한다. 그들은 마치 신데렐라 요정처럼, 장미래를 게임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안전하게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인물 이름이 암시하듯, 미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현재가 단단히 고정돼야 한다.
 
이러한 희망이 비현실적인가? 현실은 극적이지 않으며, 때로는 끔찍하다. 하지만 작품까지 비루할 필요는 없다. <여중생 A>는 인간의 믿음을 확인하고, 지금보다 더 나은 세계를 꿈꾼다. 희망은 장미래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그녀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녀의 성장에 행복해하는 일련의 감정들. 우리가 장미래를 응원하는 이유다.

 


 
 

YOUR MANAⒸ오혁진


<여중생 A> (링크)